도전이라는 이름의 도박
제가 열정을 얻고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는, 매진할 수 있을 정도의 요인이 게임을 직접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은 찾아냈습니다.
그럼 게임을 만드는데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직무가 어떤게 있는지 알아보았더니 크게 3가지였죠.
아트, 프로그래밍, 기획
아트 쪽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저는 미적 재능이 없습니다. 손그림 하나도 잘 그리지 못하고 미적 감각이 좋다고 느낀 적도 딱히 없습니다.
기획은 시도해보고 싶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라 매일 특별한 스토리라인이나 신선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게임 시스템,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는 재미 요소 등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것들을 놓치지 않고 적어놓고 기억하려고 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기획이라는 분야가 결국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구상이라는 점과, 학력 등 이를 뒷받침 해줄 만한 다른 요소의 경쟁력이 너무 떨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은 것은 프로그래밍
0과 1처럼 명확한 분야죠. 만들어낼 수 있느냐 없느냐.
여기도 사실 경쟁력은 없다시피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도 수포자 문과 출신에 대학교는 경영학을 전공한 컴공 비전공자, 코딩 경험이라고는 프론트엔드 부트캠프에서 '어느 정도' 해 본 것이 다였죠.
네, 사실 세 분야 모두 그냥 포기하는게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 드는게 당연할 정도로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입니다.
이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 1년 이상 공부에 투자하고 취업에 도전하려고 마음먹는 것은 '도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도박 중에서도 실패했을 때 다른 대안이 딱히 없는 모든 것을 건 올인입니다.
불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좋아한다고 믿었던, 열정이 넘쳐흐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임을 만드는 일이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르는게 당연했지요.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아주 간단한 유니티 게임 만들기를 따라해보게 되었습니다.
https://youtu.be/A58_FWqiekI?si=Q5l1QmwyZIpRfIlM '노마드 코더-김장 게임을 만들었다 ㅋㅋ'
간단한 플래시게임 같은 2D 게임을 Unity6로 만들어보는 튜토리얼이었지요. 미리 준비된 파일과 영상의 내용을 그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되는 수준이었지만, 실제로 따라할 때는 설정의 차이나 사소한 실수 등으로 생각보다 막히는 부분이 꽤 있었습니다.
그저 따라만 했기 때문에 유니티의 시스템이나 스크립트 파일의 코드를 당연히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하지만 잘못된 부분을 찾아내고 왜 의도대로 동작하지 않을까 곰곰이 따져보면서 혹시 이게 원인일까 추측해보는 과정을 반복했고, 혼자서 이것저것 건드려 보면서 어느새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영상과는 다르게 제가 생각한 대로 수정했을 때도 동일하게 동작하는 것을 보고 엄청난 쾌감을 느꼈습니다.
웹 개발을 공부할 때도 배웠던 간단한 문법들이 실제로 스크립트 파일을 통해 게임에 적용되는 모습을 보고 단순히 '재미있다'가 아니라 벅차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너무도 간단하고 대단할게 하나도 없는데도 내가 게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가슴이 두근거리는걸 느낄 수 있었지요.
프론트엔드 부트캠프 과정에서 간단한 기능이 웹사이트에 적용될 때 느꼈던 '오 신기하네' 정도의 덤덤한 반응과 180도 다르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웹 개발을 공부할 때는 최대한 희망적인 시각으로 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았었고, 게임 개발을 공부할 것인지 고민하는 지금은 최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의심하면서 보았는데도 극명하게 반대의 감정이 나타난 것이죠.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의 이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고 막막한 순간이 똑같이 생겨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부터 차이가 났습니다.
"왜 또 안 되는거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거야"하면서 부정적이고 답답한 감정만 가득했었는데
"어떤걸 바꿔야할까?", "뭘 놓치고 있을까" 이런 쪽으로 처음 문제를 대할 때부터 변화가 생긴걸 깨달았습니다.
당장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지만 쌓아올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의 이 감정이 절대 순간적인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지치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겠지만, 이 원동력은 살면서 제가 찾은 것중 가장 강력한 것이었습니다.